2018 토큰스카이 도쿄, 아소비모 공동주최로 4일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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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과연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정확히 인식을 하면서 논쟁이 진행되었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선비(儒)란 모두 올바른 유자(儒者)는 아니었다.두 사람 모두 ‘시의(時宜)를 제대로 알아 가장 현실적인 일에 넉넉하게 대처할 능력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바로 진유(眞儒)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그런데 고관대작 누구도 지적하거나 시정해주지 않고.그때 딱 들어맞는 해결책이 바로 ‘시의였다.
자신을 선비라 하지 않으면 섭섭할 것이다.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천재요 애국자요 학자요 경세가였던 율곡과 다산은 때와 시대를 제대로 만나지 못한 참선비였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선비의 나라였다.이렇게 구한말의 역사는 하나의 원인에만 책임을 돌리기에는 너무나 복잡했다.
숱한 요인 얽혀 일본 책임론.파시즘과 군국주의하에서 이루어졌던 방식이다.
일본이 1876년 강화도 조약을 맺을 때부터 조선을 식민지화하려고 했다는 것이다.그 결과로서 맺어진 조약의 1조는 강화도 조약 1조와 함께 조선은 독립국이라는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다.